2016년 1월 22일 금요일

할머니.

갑자기 할머니가 떠올랐다.
우리 할머니는 90세가 가까운 연세. 약 2년 2개월 전 쯤 요양병원에 입원하셨다.
처음에 할머니는 본인이 요실금이 심해서 입원하신 줄로만 아셨지만 실제 병명은 치매였다.
 치매.
본인을 잃어가는 병...
할머니께서 입원하신지 4개월이 됐을까? 나는 연애를 시작했고 한달이 채 안됐을 때 할머니를 예비 신랑과 뵈러 갔었다. 할머니는 어쩐일인지 눈물을 보였다.
나의 친할머니는, 우리 엄마를 몹시도 미워했기 때문에 나도 마음에 썩 들어하진 않으셔서 어릴때부터 좋은기억이라곤 없는 분이다... 거기다 끔찍히 아끼는 하나뿐인 고모의 딸을 나와 비교하면서 편애하셨던 분이라 내게는 언제나 부정적인 기억이 있었는데.
그런 할머니가 나에게 고맙다고 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셨다.
병은 인간의 심성까지도 약하게 만드는걸까?
당황했다. 그리고 나까지도 눈물이 나와버렸다. 깊은 미움과 깊은 사랑은 한끗 차이라더니.
할머니께서는 당시 남자친구를 엄청나게 마음에 들어하셨고 아빠에게 얘기를 잘해주셔서 아빠가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라는 의구심에 먼저 보자고 말씀 나오게끔 만들어 주셨다.  아무튼,, 각설하고.
작년 추석, 나에게 새롭게 생긴 생명에 적응하고 있던 시절. 아빠는 명절에 휑한 병원에 할머니를 그냥 두고볼 수 없으시다며 모시고 내려왔다.
할머니께서는 예상치 못한 외출에 정말 행복해 하셨다. 추석기간에 내내 아침 일찍 일어나셔서 세수를 하시고 스킨, 로션, 크림을 거울을 보시며 새색시 마냥 꼼꼼히 바르시곤 했다.
우리 가족중 으뜸으로 부지런 하셨다.
나중에 같은 병실에서 생활하시는 할머니의 전언으로 알게 된 사실인데 할머니가 가장 기분 좋은 날 하는 행동이라고 했다.
 추석 하루전날. 할머니께서는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오랜만에 지인에게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하셨고, 그 집에 모셔다 드렸다. 분명 2시간 안에 모시러 오겠다고 했는데, 그 사이에 나가신게다. 핸드폰도 두고 가셨는데, 도대체 어디로 가신 걸까.
우리 아빠, 엄마 모두 패닉에 빠졌다.
밤 7시가 넘어 해도 지고, 아직 춥지는 않지만 그래도 노인에게는 추울 수 도 있고.
할머니 가실 만한 곳을 찾아 다니고, 수소문하고, 파출소에 신고를 하고 정신없는 두시간을 보내고, 정말 어이 없게도 우리집은 101동인데 할머니께서는 102동 우리집 호수에 가셔서 초인종을 누르고 현관을 두드리고.. 하셨단다.
약 2.5km 가 넘는 길을 할머니께서 걸어오셔서, 집에 거의 다와서 102동으로 가신거다. 작은엄마께서 102동 아파트 앞에 앉아 계신 할머니를 발견하고 우리 모두는 허탈해하고, 동생과 엄마는 울었다.
나 역시도 할머니 찾는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하느라고 깜짝놀랬던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는데.. 할머니께서 멋쩍게 웃으시더니 우리 엄마에게 "배고프다.. 먹을것 없냐.." 하시는데
어찌나 허탈한지.....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할머니..  할머니에게는 이런 상황보다 본인의 배고픔이 먼저였다. 모두 함께 늦은 저녁을 먹고 나는 긴장이 풀려서인지 배탈이 나서 배가 너무 아팠다. 할머니는 "애기엄마가 아파서 어쩌누.. 나때문에..." 라고 하셨고. 계속 걱정을 하셨다.
 다음날 아침, 할머니는 나 보고 괜찮냐고 가장 먼저 여쭤봤고. 한참 있다가 "나 이제 명절에 장흥 못오겠네..." 라고 중얼 거리셨다.
어젯밤 우리는 병원에서 모셔온 아빠를 탓했고 다시는 이런일이 없도록 하라고 아빠에게 신신당부를 했었다.  그런데 할머니께서 직접 그 말씀을 하시니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 다음날 밤 할머니 모시고 간 바닷가가 떠오른다. 엄청 좋아하셨는데, 하늘에서 빛나는 보름달보다 할머니 얼굴이 더 반짝반짝 즐겁게 빛났었는데..
[스틸 앨리스]를 보면서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  기억을 잃어가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우리 할머니다..  오늘, 할머니에게 전화 한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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